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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기술과 전략물자 -역사와 사례 분석

저자 : 이은호
발행일 : 2022-04-30
ISBN-13 : 9791191812275
판형 : 신국판
페이지수 : 352 쪽
판매가 : 20,000 원

들어가는 글 

 

최근 세계 산업계의 주요 관심사는 공급망 안전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인에게도 2021년 가을에 발생했던 요소수 부족 사태는 큰 충격이었다. 2020년 초부터 미국에서 화장실 휴지가 동이 났다는 소식과 함께 슈퍼마켓의 상품진열대가 텅 빈 장면을 TV 뉴스에서 보기도 했고 중국에서 몇몇 자동차 부품이 생산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완성차 생산이 지연되고 있다는 신문 기사도 읽었지만, 세계적 공급망 위기가 우리 일상생활에 가깝게 다가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건 요소수 부족으로 인해 택배가 전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전망 때문이었다.

현재 글로벌 공급망 위기의 배경에는 몇몇 국가들이 정치·외교적 이유로 특정 물자의 교역을 제한하는 것과 코로나19로 인해 물자와 인력의 이동이 막힌 것이 함께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의 2021년 요소수 부족 사태는 중국이 호주와의 갈등 끝에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고, 세계적인 자동차 출하 지연에는 반도체 유통이 불안정해진 것과 코로나로 인해 협력 업체들이 수시로 조업을 중지하는 것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기업들이 국제 분업화, 무재고 경영, Just-In-Time 등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을 최대한 추구해 왔던 것도 일부 생산 지연과 이동 차단이 나비효과를 통해 금방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 업종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20222월 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 후 서방 국가들이 그간 보기 힘들었던 단결력을 발휘하여 러시아를 제재하고 러시아도 그에 맞대응한 것은 신냉전 시대가 시작되어 공급망 체계가 크게 바뀌는 상황까지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특정 물자의 교역 제한이 강화된 것은 지난 1~2년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201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특히 중국으로부터 국가안보와 경제 패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술 보호 제도를 강화하고 있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자국 기업을 합병하거나 지분을 획득한 후 자국의 핵심 기술을 유출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에 유의하고 있었고, 결국 2018년부터 2021년에 걸쳐 거의 같은 방향으로 외국인 투자 심사제도와 수출통제 제도를 대폭 강화하였다. 또한 제재 발동 근거도 인권침해, 부패와 사이버 공격 등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도 마련하였다. 서방 국가들의 이러한 공감대는 20222월에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일어나자 이들이 매우 신속하게 단합하여 러시아에 대해 경제 제재를 할 수 있었던 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급망 안전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주요국들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21년 봄에 대통령이 직접 공급망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대책에서 새롭게 나타난 변화는 국가가 관리하고 보호하는 물자에 핵심 광물 외 공산품인 반도체, 배터리와 의약품을 추가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미국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물자는 전략물자라고 하여 핵심 광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민간이 생산하는 산업 제품이 포함된 것은 전시를 제외하고는 드문 사례인데, 반도체와 배터리 등이 차세대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제품이라는 판단 하에 이들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반도체, 배터리와 의약품 산업에서 정부 보조금 등의 지원을 제공해 가면서 자국 내 독자 생산 기반을 구축하려는 새로운 산업정책이 나타나게 되었고, 의회에서 관련 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인텔은 물론이고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등 외국 반도체 업체들도 미국 내 공장 신설을 약속하게 되었다. 일본도 경제안전보장전략을 수립하고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로 하면서 TSMC 공장을 유치하였고, 2021년에는 경제안보를 전담할 각료로서 경제안보상직위를 신설하는 한편 2022년 현재는 의회에서 경제안전보장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전략물자관리원에는 2021년 가을 요소수 부족 사태 당시 요소수처럼 중요한 전략물자를 왜 관리하지 않는지에 대한 문의가 많이 들어왔다. 요소수는 대외무역법이 정의한 전략물자가 아니라고 답변을 해드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때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 나온 내용이 기억났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총포용 장약의 주요 원료인 아세톤을 만들지 못하게 되면서 마주하게 된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특정 물자의 부족이 국가의 안보위기로 연결되었던 역사적 사례를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우선 전략물자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어떻게 강대국의 조건이 되는지부터 알아보았다. 또한 현재의 강대국들은 모두 과거 수백 년간 큰 전쟁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물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체제를 운영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본론에 들어가서는 먼저 전략물자가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지금도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가 그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은 영국 해군이 군함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면서부터인데, 이 일은 한 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과거에 있었던 공급망 위기와 선진국의 대응을 다루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은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화약이 부족할 위기에 놓였는데, 영국은 화약 원료 중 하나인 아세톤을 생산할 수 없었고 독일은 화약의 필수 성분인 암모니아가 부족했다. 두 나라 모두 과학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략물자의 중요성과 해결방안으로 과학기술의 힘을 실감한 교전 당사국들의 인식은 지금도 선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본 내용은 냉전 시대에 공산권 국가로 고급 기술이 넘어가게 된 사례들이다. 소련은 자체적으로 기술개발을 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합법적·편법적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서방의 선진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 소련의 제조업 기반 구축, 제트엔진 개발, 잠수함의 저소음화 등이 서방 기업들이 이전해 준 기술로 가능하게 되었고, 대형 폭격기는 2세계대전 중 운 좋게 입수한 미국의 B-29 기체 덕분에 신속히 개발할 수 있었다. 1980대 이후 중국도소련과 비슷한 방법을 이용하여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 산업 분야에서도 첨단기술을 획득하였는데, 중국의 이러한 관행은 이후중국의 경제력이 획기적으로 강해지면서 서방 국가들이 기술 보호를 위해수출통제와 투자 스크리닝 제도를 강화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제품이나 기술도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기술자가 가장 중요한 전략 자산이라고 생각된다.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기술자들을 전리품으로 데려간 경우는 과거 역사에는 물론이거니와 20세기에도 있었다. 또한 이들을 우대하여 유치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본서에서는 중세 이후 오스만 터키, 영국, 프랑스와 프러시아 등의 역사에서 기술자들이 어떤 이유로 이동하게 됐고, 새로 옮겨간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과학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원자탄과 미사일이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전략무기로 등장하는 과정에서 기술자의 역할을 자세히 다루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효율적인 생산 기술이 없으면 물자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경제성을 무시하고 무한정 자원을 투입할 수 없다. 특히 전시에는 필요한 물자의 종류도 광범위하고 요구되는 물량도 많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은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얻어진 생산 기술의 발전은 지금의 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본서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대표적 사례들을 다루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조선 시대에 기술을 활용해 백성들의 힘든 일을 줄여주려는 배려가 적었고, 기술자에 대한 천시도 매우 심했다. 국가 핵심 무기인 활의 주요 소재 선택에서도 공급망 안전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겹쳐져 유럽의 역사적 사례에서처럼 주변국은 더욱 부강하게 되고 조선의 국력은 쇠퇴하여 결국 망국의 길로 가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본문에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 전략물자와 전략기술에 대한 보호가 주요국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특히 2010년대 후반기부터 강대국들이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패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기술 보호를 추진하게 되고, 이를 위해 투자 제한과 수출통제 제도를 전략적으로 강화시키는 동향을 알아보았다. 또한 최근 들어 이러한 조치들이 세계적 팬데믹, 지정학적 불안과 겹쳐지면서 국제 공급망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되는 점과 이에 대한 대응이 추진되고 있는 경향도 알아보았다.

GDP 기준 세계 10위국이 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 빈곤하던 시절에는 생각도 못했고 생각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던 사안에 대해서도 신경쓸 때가 되었다. 국가안보적 시각에서 전략물자를 관리하는 것이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재산이 늘어나면 새로운 보험에 가입해야 하듯이 전략물자와 공급망 대응에서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주요 강대국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잘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러한 연구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이은호

1장 강대국의 조건 : 전략물자 관리

 

2장 국가안보와 관련된 전략물자의 역사

     제1차 세계대전과 핵심 전략물자

냉전 시대 서방 기술의 공산권 이전

 

3장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술자와 생산역량의 역사

     역사를 바꾼 기술자

2차 세계대전 중 성공적 생산역량 구축 사례

 

4장 우리나라의 실패 사례

     고급 활(수우각궁)의 주요 소재인 물소 뿔

조선시대 기술의 몰락과 대외 유출

 

5장 최근의 세계 동향

기술 패권 확보 수단으로서 수출통제와 투자 스크리닝 강화

전략소재 관리 강화

핵심 제품의 자국 내 생산 추구

 

[부록] 전략물자의 용어 정의